우리 정부가 북한에 지원해주기로 한 쌀 40만t은 당초 북한이 2･13합의 초기조치를 이행했을 때 집행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당장 다급해진 북한은 “남측의 쌀 북송 보류는 우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엄중한 도발이고 도전”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우리 정부는 지난달 남북경제협력추진위(경협위)에서 북한에 쌀 40만t을 지원하되, 북한의 2･13합의 이행 여부를 지켜보면서 그에 따라 제공 시기와 속도를 조정할 것임을 북측에 밝혔었다. 즉, 북한이 2･13합의를 이행해야 쌀 지원을 해줄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북한에 수조원에 이르는 지원을 해주면서 이처럼 조건을 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조건은커녕, 북에서 “하나”하면 우리 정부는 둘 셋을 지원해주고 거기에 덤까지 알아서 보태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살이라도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 쌀 지원 문제에는 왠 조건이 붙었는가? 우리 정부가 뒤늦게나마 중심을 잡고 국가적 자존을 회복했는가? 비로소 효율적인 대북지원의 방법이 뭔가를 깨달았는가? 물론 천만의 말씀이다. 6자회담 합의에 따라 참가국들과 북한 간에 북핵시설 폐쇄시한을 2월13일까지로 정했고, 북한이 핵시설 폐쇄라는 약속을 지키기 전까지는 어떤 대북지원도 하지 않기로 한 약속 때문이다.
지금 단계에서 남북관계는 6자회담보다 반 걸음쯤 뒤쳐져 가야 하고, 남북관계의 초점은 비핵화에 맞춰져야 한다. 북한이 핵시설 폐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불쑥 대북지원을 재개하게 되면, 북한 지도부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남한으로부터의 지원은 얼마든지 계속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된다. 그래서 결국 6자회담 자체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남북협력은 6자회담 합의사항이 진전되는 것과 맞물려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한에 40만t의 쌀과 8천만 달러 규모의 경공업 원자재를 보내주지 못해 바야흐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측은 “왜 쌀을 빨리 지원해주지 않느냐”고 호통을 치고 있다. 단순한 호통 정도가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엄중한 도발이고 도전”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말하자면 “밥 한술 달라니까 태도가 고분고분하지 않다. 한번 해 보자는 것이냐?”하며 협박하는 식이다.
이 정도가 되면 구걸이 아니라 강도행위가 된다. 북한은 이렇게 남한 정부를 얼러대고, 대한민국의 친북좌파정권은 핵무기 들고 협박하는 북한의 전쟁위협에 짐짓 겁먹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엄살을 떤다. 그래야 친북좌파 정권은 북에 더 많은 것을 퍼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아주 짝짜꿍이 잘 맞는다.
북한에서 6월의 보리 수확기를 앞둔 요즘은 한창 보릿고개 철이다.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국제 엠네스티는 최근 지난해 북한 주민의 12%가 식량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했으며, 식량난이 이전에 비해 더 악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굶주림은 요즘이 가장 심한 철이다.
그러나 김정일과 그 일당에게 주민의 굼주림은 안중에도 없다. 그들은 핵무기 개발에 이어 새로운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달 25일 인민군 창건 75주년 군사퍼레이드에서는 ‘무수단 1호’라는 신형 중거리 미사일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거리 3천2백km 이상인 이 미사일은 이미 2003년 휴전선 인근에 남쪽을 향해 실전 배치됐다.
김정일과 그 일당도 고급 벤츠를 타고 철갑상어알에 수백만원 하는 양주를 마시는 데 아직은 여전히 불편함이 없다. 대한민국이 알아서 돈을 대주고 있기 때문이다. 훗날 역사는 이 시대와 이런 반민족적이고 반인도적인 ‘야합’을 뭐라고 기록할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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