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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필자는 해발 400m 정도의 숲속을 산책할 기회가 있었다. 산밑에는 찌는 둣한 더위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였다.
산 위 숲속에는 뜻밖에도 선선한 느낌이 들었다. 산 위 숲속은 산 밑보다 섭씨 2~3도 정도 낮다고 한다. 숲속 부드러움에 산들바람이 불어와 시원한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산 아래가 더 더운 이유는 ①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기온이 상승한 것이 체감 온도가 더 힘들게 느껴지고 ② 도시 열섬 효과라는 것으로 도시는 빌딩과 아스팔트 도로가 열을 흡수한 후 방출하면서 기온이 더 높아지는 효과가 생기고 ③ 대기 정체 현상도 한몫한다. 건물들이 바람을 막기 때문에 열이 도시에 갇히면서 기온이 상승하는 효과다. 금년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긴 열대야를 기록했다. 밤에 선풍기 정도 틀어놓으면 잠을 부를 수 있었는데 선풍기로는 흐르는 땀 조절이 되지 않는다.
금년 열대야 기간에는 거의 매일 저녁 냉방기를 틀어야 쉴 수 있었다. 한낮 섭씨 35도의 강렬한 햇살은 기상청에서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권면할 정도다. 필리핀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전화로 요즘은 한국이 필리핀보다 더 덥다면서요? 묻기도 한다. 밤낮없이 더위에 지치면 짜증을 내기도 하며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활동도 어렵고 몸에도 무리가 오는 신호들이 감지된다. 그래서 언제 이 더위가 끝나나, 답답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더위는 결국 물러가고 가을은 올 것이다. 독일 시인 릴케의 ‘가을날’ 시로 노래한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더위가 힘들면서도 햇볕을 이틀만 더 주시기를 기도하는 시가 공감된다. 햇살이 뜨거워서 힘든 것 맞지만 그 햇볕은 잘 익은 곡식과 과일들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강렬한 여름 햇빛이 있었기 때문에 더 당도 높고 탐스러운 과일을 거둘 수 있다. 만일 날마다 비만 오고 구름만 가득했다면 달달한 과일은커녕 과일을 구경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의 배경이 된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살인적인 더위와 씨름하는 기록들이 보인다. 더위가 사람을 지치고 무기력하게 하는 것은 있는데 그 더위로 인하여 가나안 과일은 당도가 높다. 가나안 땅의 포도와 무화과, 석류가 단 이유는 감당하기 힘든 뜨거운 햇볕을 견디면서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에 대추야자는 한 나무에 만개 이상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열매가 햇볕을 받고 무르익어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 주위에는 벌떼들과 파리들이 모여드는데 대추야자 열매의 달달함에 끌러온다고 한다.
사람도 같은 원리로 성숙하며 성장한다. 쉽고 곱게 성장하면 보기는 좋지만 풍성하고 자랑스러운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대부분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하고 싸우지 않으며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면서 메달을 기대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9세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소년가장이 된 청소년이 과외 공부를 가르치면서 번 돈으로 동생들 뒷바라지하며 예민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경기고를 6개월 다닌 뒤 검정고시 후 서울대를 졸업하고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23세 때 플로리다대 조교수가 된다. 그 후 뉴욕공대 부교수를 거쳐 한국 과학기술원 부원장으로 한국을 위하여 일하게 된다. 과학기술처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했다. 그분이 거친 삶을 견디고 값진 열매인 세계적 과학자로 명성을 얻고 있는 정근모 전 장관이다.
세계적인 문호 괴테는 60년 만에 명작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그의 어머니는 18살에 괴테를 낳았다. 어머니는 늘 긍정적인 신앙으로 밝은 모습이었다. 그 믿음의 흔적이 있는 파우스트를 완성한 후 자신의 전기를 통해 말했다. ‘나는 고통을 인내했으며 그 결과 ‘환희’라는 진주를 캐냈다’ 햇볕에 시달렸지만, 최고의 열매를 맺은 감사의 고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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